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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복궁 광화문, 흥례문, 영추문, 건춘문, 신무문

by 궁금이23 2024. 3.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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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

광화문은 경복궁의 정문으로 '광화'는 '군주에 의한 덕화'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광화문은 다른 궁궐들의 정문과는 달리 돌로 높은 석축을 쌓고 그 위에 중층구조의 누각을 세워서 성곽의 성문과 같은 격식으로 장대하게 지어졌습니다. 광화문은 세 개의 홍예문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중앙의 홍예문은 왕이 출입하는 문이고, 좌우의 홍예문은 왕세자와 신하들이 출입하는 문입니다. 또한 문루에는 종을 걸어두어 시각을 알리는 데 사용했습니다. 광화문은 일제강점기에 조선총독부 청사를 지으면서 건춘문으로 북쪽으로 옮겼다가 한국전쟁 때 폭격을 맞아 문루가 모두 소실되었습니다. 이후 1968년 경복궁 정문의 위치로 다시 옮겼으나 나무를 사용하지 않고 철근콘크리트 구조로 복원하는 과정에서 위치 또한 제자리를 찾지 못했습니다. 현재의 광화문은 2010년에 원래의 모습으로 제자리를 찾아서 다시 복원했습니다.

'덕화'는 ' 옳지 못한 사람을 덕행으로 감화함. 또는 그런 감화.'라는 뜻입니다. 비슷한 의미로 '포용'이라 생각하는데 '덕화'는 '포용'보다 한발 더 나아가서 감화에 이르기까지 하는 의미라고 생각합니다.

 

흥례문

흥례문은 경복궁의 중문으로 '흥례'는 '예를 일으킨다'라는 뜻입니다. 원래 홍례문의 이름은 '홍례문'이었으나 1867년(고종 4년) 경복궁을 다시 지을 때 지금의 이름으로 변경했습니다. 흥례문은 일제강점기 때 조선총독부 청사를 지으면서 철거되었다가, 1996년 조선총독부 청사를 철거한 후 2001년 복원했습니다. 흥례문 일곽의 가운데에는 백악산으로부터 흘러 내려온 물, 즉 금천이 흐르고 있는데 그 위로 영제교라는 다리를 놓았습니다. 영제교는 세종 대에 붙여진 이름으로 임진왜란 때도 큰 훼손 없이 있었다가 1867년 경복궁을 다시 지을 때 보수했습니다. 그러나 일제강점기 때 흥례문과 같이 철거되었고 2001년에 복원했습니다.

 

영추문

영추문은 경복궁의 서문으로, '영추'는 가을을 맞이한다'라는 뜻입니다. 동문인 건춘문과 대비되는 개념의 이름으로 서쪽 방위의 개념에 맞게 지어졌습니다. 영추문은 주로 문무백관이 출입하던 곳으로 특히 서쪽 궐내각사에 근무하던 신하들이 많이 이용하였습니다. 현재의 문은 1975년에 철근콘크리트 구조로 복원되었습니다.

 

건춘문

건춘문은 경복궁의 동문으로, '건춘'의 뜻은 '봄을 세우다'라는 뜻입니다. 서문인 영추문과 대비되는 개념의 이름으로 동쪽 방위의 개념에 맞게 지어졌습니다. 건춘문은 주로 왕세자와 동궁 영역이 위치한 관청에서 일하는 신하들이 이용하였습니다. 현재의 문은 고종 대에 경복궁을 다시 때 지은 문입니다.

 

신무문

신무문은 경복궁은 북문으로, '신무'는 '뛰어난 무용', '신령스러운 현무'라는 뜻입니다. 신무문은 1433년(세종 15년)에 지어졌다가 1475년(성종 6년) 문의 이름을 신무문이라 붙였습니다. 신무문 쪽은 인적이 드물었으나 신하들의 공훈을 기록해 놓은 회맹단이 있어 왕이 공신들의 충성을 다짐하는 모임이 있는 회맹제에 참석할 때 이 문을 이용하였다고 합니다. 또 영조 대에는 숙빈 최 씨의 사당인 육상궁을 참배하기 위하여 경복궁터를 길로 삼았는데, 이때 신무문을 자주 이용하였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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